울 효준방/*여수

[스크랩] 서민들의 따뜻한 친구 ‘구둣방 아저씨’

김 또깡 2009. 11. 26. 15:48

 

 

 

구둣방 아저씨가 등산화를 꿰매고 있다.

다 마무리가 되자 아주머니에게 “그냥 가세요!”하며 등산화를 건네준다.

지난번에 고쳤는데 다시 손을 본거라며 인상 좋게 웃으며 대금을 받지 않는다.

여수 미평동 구둣방 아저씨 이종화(60)씨다.


한 평 반(4.95㎡)이나 됨직한 가게, 실내는 티끌하나 없이 깔끔하다.

꼼꼼한 주인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구두를 수선하는 재봉틀,

새 신발을 만들 때 갑피를 하는 재봉틀,

수선용 망치, 구두칼,

징걸이 등의 공구들도 잘 정돈되어 있다.


“망치질 하면 먼지 나고 그러니까 바닥을 솔로 쓸어내요.”


손님 2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가게지만 “구둣방으로는 딱이제!”라며 욕심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일한다.

그런 그도 구두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를 묻자

마음이 착잡한 듯 잠시 허공을 응시한다.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겨우 마치고 일찌감치 돈벌이에 나섰다.

15세에 배운 구두일,

1980년 한때는 돈도 많이 벌어 제법 폼 나는 구둣가게도 열었었다.

한 5년 잘나가는가 싶었는데 유명메이커 신발이 쏟아져 나와 수제화는

그 빛에 가려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져갔다.


해가 갈수록 유명브랜드를 찾는 사람들이 느는데다

중국산 싼 상품들이 무더기로 들어오면서 수제화는 경쟁력을 잃고 만 것이다.

그의 가게도 별수 없이 5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전에는 수제화가 괜찮았었는데... 장사가 안된께 한 5년하고 치웠어.”


 

 

어린 시절 여수의 한 바닷가 마을에 살았던 그는 사라호 태풍으로 집을 잃었다.

1959년의 A급 태풍인 사라호 참사는 20세기 한국사중 가장 큰 재난으로 기록될 만큼 큰 재앙이었다.

그의 얼굴에 50여 년 전의 상처가 되살아나는듯했다.

설상가상 집을 잃은 지 3년 만에 아버님도 세상을 떠났다.

어린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어머님의 고생이 정말 많았다”며 그 시절을 회고했다.

그래서 그가 구두 일을 배우게 된 것이다.


“여수 양화점 여러 곳을 전전하며 기술을 배웠어요.

그때 함께했던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들 사는지...”


 

구두 광을 내고 있던 그가 손을 멈추고 잠시 회상에 젖는다.

한때 양화점을 접고 여수 국가산업단지에서 일용직근로자로 전기와 배관 일을 하기도 했다.

3남 1녀를 키워내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않고 부지런히 일을 했다.


그런 아빠의 맘을 알기라도 한 걸까.

이제껏 자식들이 별 탈 없이 잘 자라줘서 무엇보다 고맙고 기쁘다고 그는 말한다.

딸 셋은 출가하고 아들하나 남았다며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수입을 묻자 구둣방 수입이야 뻔한 것 아니냐며 일백만 원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어떤 여자 분이 와가지고 사장님 기술 좀 가르켜 주세요.

배워서 일해보고 싶어요.”


간혹 이런 분들도 있으나 도시락 싸가지고 와서 배우라고 하면 며칠 일하다 시들하고 포기하기 일쑤라고 한다.

 

 


이제는 단골도 제법 늘었다.

그렇다고 해서 별반 소득이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물어물어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으나 시내와 떨어진 곳이라 손님들이 늘어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쓰고 있는 모자가 참 멋있다고 말을 건네자 셋째 딸이 사준 것이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서울 한번 갖더니만 ‘아빠! 이거 사줄테니 써요’하며,

우리 셋째 딸내미가 선물 했는디 3년째 쓰고 다녀요.” 


구둣방을 나서려다 보니 진열된 신사화가 보였다.

시간 날 때 짬짬이 만들어 판매를 하고 있다고 했다.

틈틈이 만들다보니 신사화 하나 만드는데 5~6일이 소요된다.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품질 좋은 수제화가 많이 팔려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구둣방에 훈훈한 온기가 전해지도록.


출처 : 맛돌이의 '오지고 푸진 맛'
글쓴이 : 맛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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